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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politic

10.26사태의 이면들 (feat.김재규, 박흥주, 박선호)

by 덩대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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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적인 성향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조사해본 흥미로운 사실을 작성할 뿐입니다.

가볍게 봐주세요~!

10.26사태의 김재규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10.26사태란.....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현직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암살당한 사건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62048&docId=920431&categoryId=62048

 

10·26사태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가 현직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암살당한 사건. 10·26사태의 진상은 현재까지 흑막에 가려져 있으나, 당시 군수사부의 발표에 의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박정희의 신임을 받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이 무렵 정보업무 수행과정에서의 무능을 이유로 박정희로부터 몇 차례 힐책을 받은 데다 대통령에게 올리는 보고나 건의가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에 의해 번번이 제동이 걸리는 등 박정희와 차지철에게 불만이 쌓

terms.naver.com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1. 사실 김재규는 5.16쿠데타와 관련이 없고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던 이종찬 계열의 사람이었다.

 

2. 중앙정보부장 취임 이후 남산고문실 폐지

 

3. 중앙정보부에서 간첩조작사건 없앰 (이전 중앙정보부장 임기 3년 동안 70건이 넘었던 간첩조작사건이 김재규 재임 시절 0건임)

 

4. 중앙정보부에 의한 선거개입 차단

 

5.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카톨릭 계열 사제들 방면 (이때 김수환 추기경과 친분을 얻게 됨)

 

6. 당시 야권 인사였던 김영삼을 지원

 

7. 박정희 대통령에게 1977년 직선제를 건의하기도 했었고 1979년에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건의하기도 했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지게된 이유 중 하나)

 

8. 1979년 당시 가택연금중이던 김대중의 외출을 눈감아주어 김대중이 김영삼 측과 단합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끔 만들어 김영삼의 전당대회 당선을 도와주기도 했다.

 

바로 이 사진이 김재규의 작품이었던 셈이네요~!

 

9. 10.26 사태 직전 차지철이 캄보디아 처럼 전부 밀어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이말을 듣고 박정희 대통령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박정희는 그 자리에 있던 김재규에게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그렇게 물러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냐?"며 면박을 주었다. 그날 김재규는 집무실에 돌아와 수행비서관 박흥주에게 "귀를 좀 씻어야겠다"고 말했다.

 

10. 강압수사 금지 조치, 기구 축소, 해외정보업무 중심으로 중앙정보부를 재편, 부장 판공비 8억 원을 내놓아 직원들 퇴직기금을 제공했다.

 

11. 아버지가 세운 사학을 국가에 헌납하였다.

 

12. 10.26사태 일어나기 3개월 전,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드님에게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미리 미국으로 피해 있으라는 말을 하였다. (10.26사태가 우발적이 아닌 의도된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주장)

 

13. 김재규가 장준하의 가족을 찾아가 "장 선생님은 추락사 한 것이 아닌 정권 차원에서 돌아가셨다"라고 귀뜸해줌 (장남 장호권의 증언)

 

14. 중앙정보부장 시절에 그의 부모님은 쌀가게를 하고 있었고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이니 그의 동생에게 비리에 연루됐다고 하자 건설사를 그만 두라고 한 일화, 건설부 장관 시절엔 그의 무남독녀 딸의 결혼식에 친지들 이외엔 누구도 오지 말라고 한 일화가 있다.

 

15. 부마항쟁 당시 김재규와 박흥주가 최루가스에 맞아 초주검이 된 어린아이를 구하기위해 노력하였다. (김재규 평전 내용)

 

16. 4.3항쟁의 주역인 송요찬 장군과 마찰이 있었는데 당시 김재규 대령을 영창 보내려고 했으나 이를 말린 사람이 이종찬

 

17. 그는 최태민의 비리를 파해쳐 박정희에게 보고하였으나 별 반응이 없자 상당히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항소이유서에 이것이 10.26 발생의 계기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18. 10.26사태 이후 김계원의 증언에 의하면 시해 당일 김재규는 김계원에게 "부마사태를 폭동 진압하듯 무조건 누르면 부산 시민이 다 일어나 봉기한다. 공화당도 차지철이 무서워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못하고 있다. 이놈을 오늘 없애 버려야겠다."라고 이야기 하였다고 한다.

 

19. 박정희 시해 바로 전 김재규는 박정희와 김영삼 구속과 관련해 서로 언성을 높힐 정도로 싸웠다고 한다. (김계원 증언)

 

20. 중앙정보부장이었던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하였다.

 

21. 투옥 이후 재야인사 및 김수환 추기경이 그의 사면을 위해 노력하였다.

 

22.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들을 전부 빨갱이로 몰아서 취직을 포함해 아무것도 못하는 폐인으로 만드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생긴 '자생적 빨갱이'가 북한에서 넘어오는 '진짜 빨갱이'보다 무서운 존재라고 박정희에게 정책의 시정을 요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재규는 평소에 유능한 인재들이 빨갱이란 이유로 탄압받는 일에 안타까워 하며 인재들이 잘못된 이념에 빠지도록 몰아가는 사회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재규 동생의 증언)

 

미국의 한 채널에서 보도한 다큐의 한 장면

 

현장 검증을 하는 김재규

 

위의 17번에 관련되서는 조금 더 첨언이 있습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조사하여 박정희에게 보고를 함.

박정희가 그 보고서를 박근혜에게 주고 박근혜는 다시 최태민에게 줌.

박정희가 전에는 잘 판단해서 최태민을 없애든지 차단 했을텐데 이미 판단력이 흐려진 박정희는 김재규, 박근혜, 최태민을 불러서 3자 대면 시킴.

박근혜가 우리 최목사님은 그런 사람일리 없다고 울면서 통곡했다고 함.

박정희가 김재규 부장을 혼냄.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가 맛탱이가 갔구나 생각하고 이때부터 10.26사태를 계획했다고 함.

 

 

 

왼쪽부터 박정희, 박근혜, 최태민

 

 

 

이어서 김재규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부하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겠습니다.

 

1. 박흥주

- 서울대 갈만한 성적이었으나 집이 워낙 가난해서 육사를 진학

- 육사 성적 최상위권으로 졸업

- 관측장교 건너뛰고 바로 전포대장에 보임

- 그곳에서 김재규를 만났는데 머리가 너무 좋아서 나중에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 됐을 때 비서로 데려감

-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앙정보부장의 최측근으로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되었는데도 허름한 판잣집에서 진짜 청렴하게 살아서 주위 평판도 무척이나 좋았음

- 그러나 10.26사태가 터지고 당시 김재규의 갑작스러운 지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살해에 가담

- 감옥에 들어가서 교도소 벽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고 적음

- 변호사에게 김재규 거사의 업적을 상세히 알리고 아내랑 딸에게 아빠는 할 일을 한거라며, 절대로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살라는 유서를 남기고 사형대에서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침

 

이분이 박흥주!!!

 

2. 박선호

- 육군사관학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남인줄 알았지만 중학교 시절 사제지간으로 만남

- 그 시기 김재규의 인품을 보고 반해서 김재규가 군으로 복직한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꾸준히 찾아가 인사를 드렸고 평소 "거만하게 행동하지 말라". "책을 많이 읽어라", "검소하게 생활하라" 등 따뜻한 조언을 해줘서 가슴 속에 존경심을 품게됨.

- 이후 이것이 인연이 되어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말이 의전과장이지 박정희 술시중 들어주는 여자나 섭외하고 있으니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박선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요직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 했는데 김재규의 만류로 참고 일함

- 결국 10월 26일 거사 40분 전 김재규가 일방적으로 죽이겠다고 통보했고 지시에 따르게 됨.

- 결국 보안사 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교도소에 갇히고 재판을 받게 되는데...

- 재판 최후 진술에서 김재규를 보며 "국가의 앞날에 버러지의 눈이 아닌 창공을 나는 새의 눈으로 길러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다"며 "당시 그 상황에 놓이더라도 같은 길을 가겠다."며 진술을 마침

 

이분이 박선호!!!

 

현장 검증 당시 부하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는 김재규

 

김재규의 사형 집행 전 유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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